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故장효조,최동원 추모) 베이스볼 노블

 

“저기, 우리 둘도 좀 끼워주면 안되나?” 


며칠 전, 이웃 아파트 단지 애들과 공터에서 야구시합을 하고 있었다. 자존심을 건 대결, 어린게 무슨 자존심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어려도 사람이고, 있을 성질 다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세상에 닳지 않아서 더욱 자존심이 높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7:3으로 지고 있는 상황. 7회까지 예정되어 있는 경기에서 벌써 6회 말이었다. 아이들의 응원소리도 서서히 사그라드는 상황이었다.

그때, 두 사람이 왔다. 허름한 옷차림, 나이깨나 들어 보이는 아저씨들이었다. 낮술 먹고 돌아다니나 보다, 애써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아저씨들이 마운드 앞까지 와서 말을 걸어왔다. 경계심이 들었다. 두 아저씨의 행색을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아저씨들 한 번만 시켜주면 안되나? 한 번만 던지고, 한 번만 치께.”

   

“에이, 애들 야구하는데 왜 끼려고 그래요~”

   

싫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연신 ‘한번만’이라며 내 손을 잡았다. 곤란한 표정으로 애들을 돌아보니 다들 못본척 딴청만 피우고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두 허름한 아저씨들을 바라보았다. 어쩔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중 한 명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이 참, 차가운 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타석에 서 있던 친구는 올백을 한 아저씨가 다가오자 뒷걸음질 쳤다. 나도 이내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아저씨들 중 한명은 마운드에, 다른 한 명은 타석에 섰다. 마치 선수가 된냥 어깨에 힘을 준 모습이었다.

   

“봐라, 봐라. 아저씨가 왕년에는 공 좀 던졌다 안하나.”

   

마운드에 선 아저씨가 웃으며 농을 던졌다. 팔은 삐쩍 말랐는데, 배는 희한하게도 부풀어 올라 있었다. 마치 개구리 같았다. 볼살이 움푹 들어간 그는 배시시 웃었다. 너무 힘없는 웃음이라 잠시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는 글러브도 끼지 않은 상태에서 와인드업을 했다. 그리고는 힘차게 공을 뿌렸다. 아니 어디까지나 투구폼만, 투구폼만 힘찼다.  

마치 강속구를 뿌릴듯 한 기세였지만, 공은 포수 글러브에 들어가기도 전에 바닥을 굴렀다. 아리랑볼. 그렇게 위력이 없는 공을 던졌으면서도 그는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그의 낡아보이는 안경 밑으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디가 아픈듯한, 힘겨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야, 인마. 어째 공이 포수까지도 안 오나. 어이고, 어디 가서 야구했다 하지마라.”

 

타석에 선 아저씨가 외쳤다. 이내 배트를 놓고 바지춤을 추켜올리더니 마운드를 향해 손짓했다. 강타자가 투수를 놀리는 듯한. 마운드에서 연신 땀을 훔치고 있던 아저씨가 웃으며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와인드업, 그리고 이번 역시 힘차게 공을 뿌렸다. 두 사람모두 행색답지 않게 진지했다. 

순간, 마운드에서 빛이 퍼져나갔다. 눈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모두가 눈을 뜨지 못했다. 그리고 아저씨가 뿌린 공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뒤이어 ‘깡’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한동안 눈을 뜨기 못하다가 가만히 눈을 떴을 때, 마운드와 타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 뭐야. 뭐였지. 아저씨들 어디 갔어?”

다들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빛과 사라진 아저씨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운드와 타석에 서있던 아저씨들이 사라지다니. 주위를 아무리 둘러 봐도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모두가 잘못 본 것처럼. 그리고 마치 이 세상에 없었던 사람처럼.

   

“저기, 내 글러브에 공이 들어와 있어.”

   

외야에 서있던 친구는 얼떨떨하다는 표정으로 머리 위로 글러브를 들어 올렸다. 글러브 속에는 공이 들어 있었다. 아까 강한 빛이 쏟아졌을 때, 놀라 한쪽 손으로는 눈을 가리고, 글러브를 낀 손은 머리 위로 들고 있었다고 했다. 투수의 손을 떠났던 공은, 그 글러브 속에 들어가 있었다.  

다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대단한 비밀을 함구하는 것처럼. 게임은 우리 아파트 단지 팀이 패배했지만, 아무도 분해하지 않았다. 이긴 이웃단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뭔가에 홀린 마냥, 멍한 표정들로 집으로 향할 뿐이었다. 나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며칠이 지나면 다 잊을 것처럼 말이다. 

며칠 뒤 거실에 아빠와 둘이서 TV를 보고 있었다. 아빠는 전형적인 남자처럼 소파에 누워 리모콘을 만지작 거리셨다. 나는 글러브를 배고 누웠다. 채널이 연신 돌아가다가, 스포츠 뉴스에서 멈췄다. 아빠 역시 나 못지않게 야구를 좋아하는 야구광이라 경기는 다 못 보더라도 스포츠 뉴스는 챙겨보시는 편이었다.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다음 소식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로야구의 영웅 최동원 선수가 별세했습니다…’

 

TV화면에서 익숙한 얼굴이 비쳐지고 있었다. 안경을 쓴, 시골 아저씨 같은 인상. 분명 어디서 봤던, 본지 그리 오래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롯데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분명 이대호나 다른 롯데 선수들이 올드 유니폼 데이때 입었던 유니폼이었다.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 세우고 주먹을 불끈 쥔 모습. 그 사람, 그 아저씨임이 분명했다.

   

‘타격의 신이라고 불렸던 장효조 선수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라 슬픔은 더욱 컸습니다.’

   

뒤이어 또 하나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올백 머리, 수염자국이 보였던 중년의 아저씨. 그리고 타석에 섰던 아저씨. 티비 화면에서도 그는 덩치 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장효조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빠, 저 사람들 유명한 사람이야?”

“유명하냐구? 아마 야구의 신이 있다면 저 두 사람일거야.”


故최동원(1958~2011)

하늘나라 마운드에서 신명나게 공을 던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정공, shadowpitchi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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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찌롱찌롱 2011/09/16 17:09 # 삭제

    잘 읽고 갑니다. 짠하네요.
  • 정공 2011/09/19 15:36 #

    감사합니다.
  • 울프우드 2011/09/17 02:59 #

    자이언츠 팬으로서...그리고...고 최동원 님의 84년 투구를 보며 어린 나이에 야구팬이 되어 지금도 야구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눈물이 핑 정도입니다....좋은 글 감사합니다..
  • 정공 2011/09/19 15:36 #

    좋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최동원 선수를 오랫동안 기억하시길.
  • 무쇠팔 2011/09/17 17:00 # 삭제

    왠지 눈물이 나네요...
  • 정공 2011/09/19 15:36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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