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도 | 안녕, 나의 에이스 이강철 미디어이닝

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608n08642?mid=s1000

최근 손영민 선수와 유동훈 선수를 그런 생각이 납니다. “요즘 친구들은 이강철을 알까.” 당시 타석엔 홍성흔 선수였습니다. 마운드를 고르는 이강철 선수 발끝이 그리 가벼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경기는 KIA 타이거즈로 기울었고, 누가 와도 역전은 없던 당시. 투수로서는 황혼의 나이. 타이거즈 팬으로 단 한 번도 이강철 선수의 공을 의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 때도 그랬습니다.


어린 시절 해태 에이스로 좋아했던 이강철이 이제는 KIA 투수진을 책임지는 코치로 돌아왔다. (사진=연합뉴스)

별로 세련될 것 없었던 초등학생의 나이, 친구들과 테니스 공으로 야구를 하다가 무등구장으로 달려 나온 그 때. 친구들과 그물에 매달려 ‘이강철,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이강철 선수의 손에서 떠난 공은 포수 미트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꼭 그래야만 했습니다.

포수 미트는 텅 비어있었습니다. 서서 함께 응원하던 친구는 주저앉았습니다. 공은 외야의 관중석에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공이 관중석에 부딪혔을 때. 마음속에 무언가가 부서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많은 것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친구가 울며 그물망을 미친 듯 흔들었던 것, 화가 난 아저씨들이 휴지통을 태웠던 것, 그리고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그 아저씨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다는 것입니다. 나와 친구들, 그리고 아저씨들의, 타이거즈의 가을야구가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코를 찔찔 흘리며 울던 우리, 우리가 불쌍했던지 함께 응원했던 아저씨가 사준 쭈쭈바. 친구들과 울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때 먹었던 쭈쭈바는 왜 그리 눈물 어린 소금맛이 나던지요.

부모님께 도대체 말도 없이 어딜 갔다 왔냐며 꽤 많이 맞았습니다. 아파서 울었는지 경기가 져서 울었는지, 다음날 눈이 퉁퉁 부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분했습니다. 누구보다 좋아했던 나의 에이스가 그렇게 주저앉는 모습에 너무나도 속이 상했습니다.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빨간, 검은 유니폼의 시대를 보며 저도 자랐었습니다. 참 대단한 선수가 많았지만. 유독 이강철 선수는 저의 우상이었습니다. “이종범이 최고다. 이강철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이야기로 친구와 코피가 터질 정도로 싸웠었습니다. 정말 어렸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삼성 라이온즈로 가서 먹튀 소리를 들었던 그였지만 저는 좋았습니다. 해태로 언젠가 돌아올 것만 같았습니다. 그 마지막 홈런을 되갚아주기 위해, 다시금 광주로 향하리라 믿었습니다. 누구도 아닌 이강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급기야 해태에서 KIA로 주인이 바뀌고, 그 역시 타이거즈로 돌아왔습니다. 예전 같지 않았지만 그가 타이거즈 선수로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군요.


지난해 10월3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김동재 코치를 돕기 위한 자선경기' 천하무적 야구단과 일구회의 경기에서 일구회의 이강철 코치가 연습투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그 날 이후 저는 한동안 야구를 보지 않았습니다. 공부 때문에 보지 않았다는 변명을 하기엔 웃음이 납니다. 그의 공 하나하나가 그렇게 힘겨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많은 감독이 타이거즈를 거쳐 갔고 그보다 많은 선수들이 사라져갔다는 것, 그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선동렬 선수는 어느새 감독이 되었고, 선배들 사이에서 볼을 줍던 이종범 선수는 최고령 선수가 되었지만, 저와 이강철 선수가 가진 세월의 흐름을 읽고 살지는 못했습니다.

이강철 선수는, 이제 타이거즈의 투수를 책임지는 코치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때 만루 홈런을 맞았던 그의 표정이 기억납니다. 그의 눈가엔 물기가 촉촉해보였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마운드에서 뒤돌아 입을 꽉 다물었지만, 눌러쓴 모자도 그의 눈물을 감출 수가 없던 그 때, 그게 마지막으로 본 그의 모습입니다. 사실 이런 고백은 조금 후회가 됩니다. 그가 은퇴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도, 너무도 후회가 됩니다.

이제는 어린이였던 그 때처럼 눈물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이강철 선수가 마운드를 지배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손을 거친 투수들이 그 마운드에 설 것입니다. 불펜에서 투수들을 바라보며, 과거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그의 찬란했던 투수로서의 나날을 그리워 할 것입니다.

야구장으로 발길을 돌려야겠습니다. 그리고 그가 던졌던 꿈도 떠올리려 합니다. 누구보다 성실했던, 묵묵히 마운드를 지켰던 선수. 그래서 응원합니다. 그 때 무너졌던 그의 모습, 그리고 어린 마음에 상처 입었던 것은 이제 야구공의 실밥처럼 잘 꿰매져 있을거라 믿습니다.

안녕, 에이스 이강철

*이 기사는 네이트에 송고되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608n08642?mid=s1000 에 올려 부탁드립니다.

덧글

  • 역사관심 2011/06/08 12:11 #

    선동렬과 문희수, 신동수, 김정수, 차동철등이 이미 막강 마운드를 구성하고 있던 때,
    괴물 신인 3인방이 또 입단하죠- 조계현, 이강철, 이광우 황금의 3인방 입단하다! 란 소식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중 이광우만 기대에 못미쳤을뿐, 조계현과 이강철은 선동렬과 짝을 이루어, 문희수-신동수등을 이어,
    프로야구사상 가장 완벽에 가까운 원-투-쓰리 펀치를 이루죠. 거기에 이대진이 가세하고 고 김상진이 가세하면서 그야말로 당시 타이거즈 투수진은 완벽해집니다.

    저도 가장 좋아하던 투수가 바로 이강철입니다. 이름은 강하지만, 항상 웃는 호감형 얼굴, 그러나 외유내강형의 핵잠. 잠수함 투수중 역대최다승 (통산 역대 2위), 역대 최다 탈삼진, 역대 최다 이닝 등 모든 부분을 꿰차고 있는 레전드.
    모르면 이상한거죠 (한국프로야구가 그만큼 역사를 조명안해준다는 반증일테고).
  • 정공 2011/06/09 02:49 #

    이상하게 이강철 코치는 저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잠수함 투수로는 저렇게 선발로 롱런한 선수는 없는데요.
    이게 다 팀에 뛰어난 투수들이 너무 많아 생긴 팀킬(?)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성기가 지나서 KIA 유니폼을 입고 뛸 때도 참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하늘에 있는 故 김상진 선수만큼 좋아한 선수인데...
    코치 되고 욕도 먹고 그럴땐 참 씁쓸하고 그렇더라구요.
  • 역사관심 2011/06/09 05:19 #

    옳은 의견이십니다. 기아타이거즈때문에 산다 라는 책에서도 나오죠 이 부분이. 입단때부터 항상 선동렬에 이은 2인자로, 선동렬이 마무리로 돌아설 무렵에는 2년 연속 다승왕을 구가하는 조계현에 이어 2인자로 꾸준한 임팩트를 주지만 2인자 인상을 준 항상 쌍두마차같은 존재였다고. 실제로 통산기록에서조차 송진우에 이어 모두 2위가 많구요. 개인 타이틀에서도 삼진, 다승 숱하게 2위했었죠;

    하지만 누가 뭐래도 최고의 핵잠은 이강철입니다. 우승수나 커리어나 뭐로 보나 한국 투수 10명 뽑으면 무조건 들어갈 대투수죠.
  • 정공 2011/06/09 12:35 #

    혹자는 조금만 위급한 상황이면 선동렬이 올라와서 되려 승수를 깎았다고 하더군요.
    뭐 이건 코감독님 스타일이었고 유독 이강철만 겪은 것도 아니었지만...
    너무 조용조용한 이미지(?)도 한몫을 했다고 봅니다.
    뭐 작년에 로페즈 순한양 만든 걸 보면 그리 내성적이신 분은 아닌거 같은데 ㅎㅎㅎ
  • 침묵중 2011/06/08 15:57 #

    누적으로 보면 송회장님 다음이 이강철코치님이죠.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묵묵히 타이거즈를 지켜오신 분이기도 하고
    성실하게 오래오래 멋진 모습을 보여줬던 이런 분들에 대한 평가가 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분명히 보면 볼수록 대단한 선수이니깐요.
  • 정공 2011/06/09 02:50 #

    대단하고 멋있게 선수생활을 한... 선수로서도 멋있었으니 코치로서도 완벽히 자리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작년엔 제법 호평을 받았는데 올해는 좀 욕도 많이 먹고 그렇더라구요.
    첫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꾸준히 타이거즈를 지켜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 마무리불패신화 2011/06/08 17:40 #

    90년대를 정민철과 양분한 선수인데(탈삼진,다승,이닝 1위) 저평가 당하는걸 보면 안타깝습니다.
  • 정공 2011/06/09 02:52 #

    이강철 코치를 모르는 사람도 많더라구요. 뭐 그런 사람은 붙잡고 장황할 정도로 설명하곤 합니다만...
    꽤 대단한 기록을 세운 선수인데 아쉬워요. 동시대에 좋은 선수들이 많기도 했고... 조용한 성격이고 해서
    그런가 아닌지 싶습니다. 참 인상도 좋고 공도 좋았는데...
    언젠가는 재평가 될 날이 있겠죠 ^^
  • 역사관심 2011/06/09 05:21 #

    6시즌 연속 15승 (6년인가 더 되나 모르겠네요), 10시즌 연속 10승이상. 이걸로 말 다했죠;
  • 정공 2011/06/09 12:36 #

    부상이 아니었다면 좀 더 연속 10승 기록을 이어갔을거라고 봅니다.
    그놈의 부상이 문제고, 이 역시 '만약'이라는 가정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ㅎ
  • 울프우드 2011/06/09 22:52 #

    좋은 글입니다. 저도 타이거즈 투수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이강철 선수였지요(지금은 코치님이시지만...) 정말 언더핸드 투수로서 뿐만 아니라 꾸준함에 있어서는 KBO 역사에 길이 남을 선수가 아닐까 싶습니다...워낙에 선동렬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다 보니 조금은 저평가된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요....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정공 2011/06/10 22:20 #

    선동렬이 워낙 넘사벽이라서 다른 투수들도 마찬가지로 피해(?)를 입었던 ^^;;
    KIA로 넘어와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이젠 코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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