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 사라지지 않은 옛사랑의 그림자 차가운 옛사랑, 야구

(타이거즈의 유니폼은 여러번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저 유니폼이 이강철의 선수시절 마지막 유니폼이었습니다.)

타석엔 홍성흔 선수였습니다. 마운드를 고르는 이강철 선수의 발끝이 그리 가벼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기는 KIA 타이거즈로 기울었고 하느님이 와도 역전은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투수로서는 황혼의 나이. 하지만 타이거즈의 팬으로 단 한 번도 이강철 선수의 공을 의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별로 세련될 것 없었던 초등학생의 나이, 친구들과 테니스 공으로 야구를 하다가 무등구장으로 달려 나온 그때. 친구들과 그물에 매달려 ‘이강철,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이강철 선수의 손에서 떠난 공은 포수 미트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습니다. 꼭 그래야만 했습니다.  

포수 미트는 텅 비어있었습니다. 서서 함께 응원하던 친구가 주저앉았습니다. 공은 외야의 관중석에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공이 관중석에 부딪혔을 때. 마음속에 무언가가 부서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많은 것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친구가 울며 그물망을 미친 듯 흔들었던 것, 화가 난 아저씨들이 휴지통을 태웠던 것. 그리고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그 아저씨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친구들과 그 아저씨들의, 그리고 타이거즈의 가을야구는 막을 내렸습니다. 

코를 찔찔 흘리며 울던 우리가 불쌍했는지 함께 응원했던 아저씨가 사준 쭈쭈바. 친구들과 울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먹었던 쭈쭈바는 왜 그리 짰는지. 도대체 말도 없이 어딜 갔다 왔냐며 꽤 많이 맞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파서 울었는지 경기가 져서 울었는지. 다음날 눈이 퉁퉁 불어 붕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나는 붕어1. 나와 함께 야구장을 갔던 친구 둘은 붕어2, 3이었습니다.

 

(97' 한국시리즈 MVP. 쟁쟁한 선수들 틈에서 조용히 해태왕조를 지탱하던 그의 수줍은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빨간, 그리고 검은 유니폼의 시대를 보며 자랐었습니다. 참 대단한 선수가 많았지만. 유독 이강철 선수가 저의 우상이었습니다. ‘이종범이 최고다. 이강철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친구와 코피가 터질 정도로 싸웠었습니다. 참 어렸던 것 같습니다. 삼성 라이온즈로 가서 먹튀 소리를 들었던 그였지만 저는 좋았습니다. 해태로 돌아올 것만 같았으니까요. 해태에서 KIA로 주인이 바뀌고, 그 역시 타이거즈로 돌아왔습니다. 예전 같지 않았지만 그가 타이거즈 선수로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가슴 벅찼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 날 이후 저는 야구를 보지 않았습니다. 공부 때문에 보지 않았다는 변명을 하기엔 성적은 형편없습니다. 그동안 많은 감독이 타이거즈를 거쳐 갔고 그보다 많은 선수들이 사라져갔습니다. 선동렬 선수는 어느새 감독급이 되었고 이종범 선수는 최고령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강철 선수는, 타이거즈의 투수를 책임지는 코치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때 만루 홈런을 맞았던 그의 표정이 말입니다. 그의 눈가엔 물기가 촉촉했습니다. 마운드에서 뒤돌아 입을 꽉 다물었지만, 눌러쓴 모자도 그의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마지막으로 본 그의 모습입니다. 사실은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가 은퇴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도, 너무도 말입니다.

(이제는 선수가 아닌 코치지만, 여전히 그는 타이거즈 그 자체입니다.)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 날입니다. 이제는 어린이였던 그때처럼 눈물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운드에 더 이상 이강철 선수가 서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손을 거친 투수들이 그 마운드에 설 것입니다. 불펜에서 투수들을 바라보며 과거를 떠올릴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찬란했던 투수로서의 나날이 말입니다. 

오늘은 목동구장으로 발길을 돌려야겠습니다. 그리고 그가 던졌던 공을 떠올리려 합니다. 누구보다 성실했던, 묵묵히 마운드를 지켰던 선수. 그가 꿈꿨던 야구를 그가 성장시킨 투수들을 통해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무너졌던 그의 모습, 그리고 어린 마음에 상처 입었던 것은 이제 야구공의 실밥처럼 잘 꿰매져 있으니까요. 

[정공, shadowpitching@gmail.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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