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 미트는 텅 비어있었습니다. 서서 함께 응원하던 친구가 주저앉았습니다. 공은 외야의 관중석에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공이 관중석에 부딪혔을 때. 마음속에 무언가가 부서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많은 것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친구가 울며 그물망을 미친 듯 흔들었던 것, 화가 난 아저씨들이 휴지통을 태웠던 것. 그리고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그 아저씨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친구들과 그 아저씨들의, 그리고 타이거즈의 가을야구는 막을 내렸습니다.
코를 찔찔 흘리며 울던 우리가 불쌍했는지 함께 응원했던 아저씨가 사준 쭈쭈바. 친구들과 울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먹었던 쭈쭈바는 왜 그리 짰는지. 도대체 말도 없이 어딜 갔다 왔냐며 꽤 많이 맞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파서 울었는지 경기가 져서 울었는지. 다음날 눈이 퉁퉁 불어 붕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나는 붕어1. 나와 함께 야구장을 갔던 친구 둘은 붕어2, 3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 날 이후 저는 야구를 보지 않았습니다. 공부 때문에 보지 않았다는 변명을 하기엔 성적은 형편없습니다. 그동안 많은 감독이 타이거즈를 거쳐 갔고 그보다 많은 선수들이 사라져갔습니다. 선동렬 선수는 어느새 감독급이 되었고 이종범 선수는 최고령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강철 선수는, 타이거즈의 투수를 책임지는 코치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때 만루 홈런을 맞았던 그의 표정이 말입니다. 그의 눈가엔 물기가 촉촉했습니다. 마운드에서 뒤돌아 입을 꽉 다물었지만, 눌러쓴 모자도 그의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마지막으로 본 그의 모습입니다. 사실은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가 은퇴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도, 너무도 말입니다.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 날입니다. 이제는 어린이였던 그때처럼 눈물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운드에 더 이상 이강철 선수가 서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손을 거친 투수들이 그 마운드에 설 것입니다. 불펜에서 투수들을 바라보며 과거를 떠올릴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찬란했던 투수로서의 나날이 말입니다.
오늘은 목동구장으로 발길을 돌려야겠습니다. 그리고 그가 던졌던 공을 떠올리려 합니다. 누구보다 성실했던, 묵묵히 마운드를 지켰던 선수. 그가 꿈꿨던 야구를 그가 성장시킨 투수들을 통해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무너졌던 그의 모습, 그리고 어린 마음에 상처 입었던 것은 이제 야구공의 실밥처럼 잘 꿰매져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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