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당연한 듯 있던 골목길. 낮은 담 사이로 이웃 간 담소와 음식이 넘나들던 그런 골목이 이제는 수직의 아파트, 그 긴 그림자 아래 조용히 웅크리는 세상으로 변했다. 현실 속 높은 아파트 아래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옛 골목이 보존되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백운 2동 난지실 마을이다.
당산나무와 예전의 시끌벅적함이 사라진, 이 옛 일기 같은 골목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서부터 <도란도란 난지실 골목제>는 시작되었다.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골목이라는 공간으로부터 어떤 것을 끌어낼 것이며, 이 축제로 인해 주민들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가. 수많은 고민들이 쌓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될 것인가였다.
그런 고민 하에 나온 결과물이 바로 <도란도란 난지실 골목제>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놀았던 게 언제였지 기억이 안나’
한 할머니의 말씀처럼 조용히 나이를 먹어가는 골목을 다시 시끌벅적하게 만들고 생명을 불어넣자는 것이 이 골목제의 최종목표였다.
사전준비부터 실행까지 근 2달여가 걸린 도란도란 난지실 골목제의 디데이. 자칫 찾는이 없는 축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골목에 사람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어른부터 아이까지 전 연령층이 한껏 난지실의 신작로를 매우기 시작했다. 가깝게는 이 난지실 마을의 주민부터 멀게는 주변 아파트 거주민들, 그리고 서울에서 내려온 분도 있었다.
<도란도란 난지실 골목제>는 크게 5가지의 핵심 갈래로 이루어졌다. 전시, 놀이, 체험, 공연, 그리고 먹거리다.
그중 전시의 경우, ‘난지실 골목전-구름마을 좋을시고’라는 타이틀로 골목길에 살고 있는 이웃들의 사연과 백운동 옛 사진 등을 통해 마을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역사를 끄집어냈다. 이 축제를 기획한 ‘문화기획그룹 도란’의 기획자들이 백산 노인정에 상주하며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주민들의 추억의 사진과 물품들을 모아 전시했다. 특히 윤재순 할머니는 젊은 시절 해변에서 찍은 수영복 사진, 단풍여행 떠났던 계모임 등 누구나 한 장쯤 간직하고 있을 듯 한 흑백사진을 벽면에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놀이는 골목제라는 주제에 맞게 예전 골목에서 했던 놀이들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아이들이 신작로의 언덕을 부리나케 뛰어다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부터 어른들이 막걸리 한 잔씩 하며 즐기신 전라도식 윷놀이 까지.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한 놀이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한 줄의 고무줄 위를 신나게 뛰는 ‘고무줄놀이’었다.
그리고 전 연령층에 호응을 얻었던 체험은 페이스페인팅, 네일아트, 쑥뜸, 캐리커처로 이루어졌다. 골목 곳곳에 얼굴에 예쁜 그림을 그린 아이들을 볼 수 있었고, 네일아트의 경우엔 아이부터 쑥스러워하시는 할머님들까지 폭넓은 연령층에게 호응을 얻었다. 구름등의 경우 아이와 부모가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금방 자리가 찼고 특히 캐리커처의 경우 만족도가 높았던 프로그램. 노인분들에게는 쑥뜸의 인기가 대단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체험이 재능기부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송하울림의 길놀이로 시작된 공연은 광주 만돌린 챔버, 서광중학교 사물놀이반, 하모니테라피, 풍선묘기의 달인 박종현님, 가격 정용주님의 다채로운 무대로 펼쳐졌다. 지역 공연팀을 초대하여 지역성을 담고, 단조롭고 틀에 박힌 공연 레퍼토리가 아닌 다양한 종류의 공연으로 축제의 질을 더했다.
그리고 막걸리와 돼지머리고기, 김치, 국수등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여 놀이를 하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공연으로 눈과 귀가 즐거운데에서 머물리 않고 입까지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이 축제를 기획한 <문화동네 기획인력과정> 교육생들 중 백운2동에 연고가 있는 사람이 전무했던 상황에서 주민들과 주민자치위, 주민센터 등 지역민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축제였다. 특히 공간을 제공해주시고 심지어 밥까지 지어주셨던 백산 노인정의 할머님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주민을 위한 자리라고 흔쾌히 협찬을 해주시는 분들, 무대에 서주신 분들 역시 이 축제의 주역이었다.
이 난지실 골목제를 기획한 문화기획그룹 도란은 고용노동부 주최하고 남구청·광주문화재단이 주관한 <문화동네 기획인력 양성과정>의 교육생들로 이루어진 모임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문화기획여지도 공모전에서도 수상한 바 있다.
(2014.10.29 백운2동 마을지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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